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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공연 리뷰

[영화]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미주리 애빙 외곽의 세 개의 광고판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어제 저녁 오스카 영화 시상식을 봤다. 화려한 할리우드. 그들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에만 관심을 쏟지 않고, 현실 세계: 성폭력 혹은 성을 뇌물로 바쳐야만 살아남는 여배우들의 상황, 흑백 인종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아시안인 나의 눈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 뭉클함이 남는 시상식이었다. "Representation matters!" 재현은 중요하다. 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남았다. 이는 Coco 애니메이션 상을 받은 사람의 말이다. 다인종 사회라는 미국에는 백인 여성, 백인 남성, 흑인 여성, 흑인 남성, 아시안 남성, 아시안 여성, 히스패닉 여성, 히스패닉 남성, 트랜스 젠더 등 성별, 인종, 성적 지향성이 다양한 사람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들을 다양하게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단지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균일화 되거나 평준화, 표준화된 인물들: 날씬하고 젊은 여자, 돈 많은 금수저 남자만을 우상화 혹은 이상화 하는 영화/드라마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국 영화/드라마를 꿈꾼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쓰리 빌보드-미주리주 애빙시 외곽의 세 개의 광고판: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미주리 주 애빙 시 외곽에 세 개의 광고판이 있다. 이 광고판은 외곽에 위치해 있기에 오랫동안 그 누구에 의해서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성이 이 광고판 세 개 모두를 일 년동안 쓰고싶다는 제안을 한다. 첫 한 달동안의 광고료를 지불하고 드디어 그녀의 문장이 광고판에 게시되었다. '내 딸은 죽임을 당하는 동안 강간을 당했는데도, 어찌 아무도 잡혀가지 않았을까. 애빙 시 경찰서장은 답하라.' (대략적인 번역임) 의 내용을 담은 광고였다. 이 일로 주인공 (Frances McDormand 배우명)은 애빙 시의 경찰들과 대립, 갈등, 반목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는 상해, 폭력, 욕설, 방화가 등장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미화가 없다. 힘껏 욕하고, 분노를 표하며, 화를 내며 상대방을 건물 2층에서 떨어트리기도 한다. 이 경찰은 오스카에서 올해 (2018) 남우 조연상을 타고, 주인공은 여우 주연상을 탄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압권은 상대방의 눈으로 보는 장면에 있었다. 


폭력, 다시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경찰서장은 영화 중반에 이르기 전, 그러니까 주인공의 딸의 강간 및 살해 사건의 가해자를 잡지 못하고, 개인적 사정: 암 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상당히 놀라운 전개다. 그 누구도 경찰서장이 자살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으니 말이다. 경찰서장의 죽음은 이 작은 도시 애빙의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 '탓'을 주인공에게로 돌린다. '당신이 그 광고판에 그런 문장만 넣지 않았어도, 경찰서장이 자살을 했을까?' 그리고 그 경찰 밑에서 일하는 한 경찰(샘)은 상사의 죽음으로 인해 거의 이성을 잃고, 상사의 죽음을 광고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경찰서 바로 길건너편에 있던 광고 회사 사장: 젊은이 를 막무가내로 구타한 다음, 그가 있던 2층에서 유리창을 깨고 그를 밀어 버린다. 다행히도 이 젊은이는 목숨은 건사한다. 그런데 영화의 무모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사람이 없음을 수차례 확인한 다음 경찰서에 불을 질러 버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찰서에는 바로 이 폭력적인 경찰 샘이 이어폰을 꽂고 이미 죽은 자신의 상사가 그에게 남긴 편지를 조용히 읽고 있었다. 이 경찰, (무고한 시민을 이층에서 밀고 구타한 죄로 바로 잘린다.) 방화 속에서 역시나 목숨은 건진다. 엄청난 화상을 온 몸에 입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 한 병실에서 이 화상입은 샘과 그가 이층에서 밀어버린 광고 회사 젊은이가 조우한다. 광고 회사 젊은이는 온 몸을 붕대로 칭칭감은 경찰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미 그 경찰은 자신이 폭력을 가한 광고회사 젊은이를 알아보았다. 젊은이는 친절하다. '오렌지 주스를 줄까?' 라고 물어본다. 그런데 경찰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고백하고 자신을 밝히다. 젊은이는 너무나도 놀라워 하지만 상대방의 처지를 보고 안타까웠을까? 그가 가해자임을 인지하고도 그에게 오렌지 주스를 갖다준다. 재미있게도 영화의 화면 가장자리는 붕대로 씌워져 있는 효과를 낸다. 누구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는 것인가. 

누구의 시선, 누구의 입장은 정말로 중요하다. 할리우드에서는 점점 소외된 사람들 혹은 권력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고, 이것이 단순히 '유행이나 흐름'이 아닌 제도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래는 이 영화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로 오스카 상 (2018)을 탄 프란시스 맥도만의 수상 후 무대 뒤에서 이뤄진 수상소감 인터뷰이다. 

https://youtu.be/-86vgvZGMs4

이 수상소감에서 프란시스 맥도만은 시상식에 참석한 이들중 여성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한다. 당신이 여성임을, 이 남성 중심적인 할리우드 판에서 그래도 잘 견뎠고 잘 살아왔음을 스스로 칭찬하라고 하는 의미로 들렸다. 실제로 할리우드 배우들의 남 여 별 임금 격차가 상당하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바이다.  

할리우드에서 여성의 성을 매개로 권력을 휘두르고, 또 반대로 자신이 가진 권력을 매개로 여성에게 성폭력/성희롱을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시상식에서 거론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이 '사건'이 되고 사회적 이슈로 떠 오르게 된 것은 가해자의 고백이 아닌 여성들의 용기있는 발언 덕분이다. 그들로 인해 역사가 새로 씌여지고, 문화가 바뀐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제 오늘 실시간 검색어였던 정치인의 이름. 실망과 분노가 올라온다. 그리고 소신과 용기로 발언을 해 준 그 분께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